2012년 6월 14일 목요일

시냇가에 심은 나무

하드정리를 하다가, 예전에 쓴 글을 하나 발견했다..2004년 4월 3일에 쓴 글이다..내용을 보아하니 2월달에 동계수련회를 다녀와서, 대구 동일교회의 2청년부(대학부)원으로서의 마지막 한 해를 남겨두고 후배들에게 쓰는 글이었다..청년부 월간지에 기고하려고 했던 글인지 기억은 안나지만, 오타도 좀 있고 마지막부분은 내용이 좀 흐지부지한 것으로 보아 완전히 탈고하지 못하고 적다가 만듯한 글같다..


그러나 2004년 2월에 졸업하고, 2005년 1월 입사전까지 백수시절을 시작하던 상황에서 적은 것이라 그런지, 내가 쓴 글임에도 현재 백수상태인 나에게 와닿는다..ㅜㅜ 그런데 요즘 내가 셀모임에서 이야기하는 내용과 큰 차이가 없는걸 보면 '내 신앙이 자라지 않고 그냥 그상태인가?' 라는 생각을 하게되기도 한다..

앞으로는 예전에 썼던 글들을 아직 파일이 남아있으면 블로그에 올려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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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냇가에 심은 나무

26대 김주희


 이제 제2청년부의 최고 선배가 된 상황에서 후배들에게 선배로서 제대로 된 충고한 번 못해준 것 같아 너무나 부끄러울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그런 부끄러움을 조금이나마 덜고자 이렇게 펜을 듭니다. 부족한 선배인지라 여러분들에게 큰 도움이 될 충고들은 해주지 못하겠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 제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를 잘 깨달아 알고, 제가 전하려 한 것보다 더 큰 은혜를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동계수련회가 끝난지도 한달이 더 지났네요. 그 곳에서의 은혜스러웠던 시간들, 충만했던 시간들이 아직도 생각나면서 다시 그 때로 돌아가고 싶어집니다. 특히 2청년부에서의 마지막 수련회를 보낸 저에게는 더더욱 그렇겠지요. 그러나 항상 수련회가 끝나고 나서 사람들이 하는 말은 ‘작심삼일’이라는 것입니다. 즉, 수련회에서 받은 은혜들을 계속 간직하지 못하고, 다시금 원래의 생활로 되돌아오는 것이겠지요.

과연 무엇이 문제이기에 우리는 그 은혜를 계속 간직하지 못하고 쓰러지게 되는 것일까요?저는 그것이 자꾸 은혜를 ‘간직’하려고 노력하는 우리의 모습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실 우리는 무언가를 간직하고 있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마치 깨어지고 금이간 질그릇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안에 아무리 많은 은혜를 채워도, 물이 깨진 그릇에서는 그 물이 새어나가 머물러 있을 수 없듯이, 우리는 그 은혜를 금방 잊어버리게 됩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생각. 바로 그것이 문제인 것이지요.

‘달마야 놀자’라는 영화에서, 절을 떠나느냐 마느냐의 결정을 두고, ‘밑빠진 독에 물채우기’를 내기로 하게 됩니다. 결국 어떻게 그 독에 물을 채울 수 있었습니까? 바로 그 밑빠진 독을 깊은 물 속에 던져넣는 것이었습니다. 그 독 자체는 물을 담고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지요. 이와같이 우리도, 그저 한 번 받은 은혜를 간직하며 오랜 시간을 사는 것이 아니라, 그냥 하나님의 은혜안에 뛰어들면, 우리는 평생 그 은혜를 누리며 살 수 있게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이것을 ‘시냇가에 심은 나무’에 비유합니다. 아무리 가뭄이 계속되어도, 그 냇물이 말라버리지 않는 한 그 나무는 물걱정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찬양의 가사처럼 하나님의 사랑안에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 번의 은혜로 오랜 시간을 버티려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 선인장과 같이 되어버릴 것입니다. 그 안에만 물을 간직하고, 밖으로는 물을 내보내지 않기위해 가시를 세우고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결국 그런 신앙은 다른 이들에게 상처를 주는 신앙이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안에 깊이 잠기고 뿌리내리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다른 이에게도 풍성한 열매와 시원한 그늘을 제공하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은혜 안에 뛰어든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선 그것은 앞서 설명했듯, 자신이 무언가를 할 수 있고 은혜를 유지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며 그분께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인생을 포기하고 살아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야하는 것입니다. 세상사람들은 자기 혼자만의 힘으로 힘겹게 세상을 살아가지만,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기에, 우리가 어렵든 좋든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주시고 인도해 주신다는 믿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세상사람들은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할 수 없어’라며 포기하지만, 우리는 ‘나는 못해도 하나님이 도와주시면 하실 수 있다.’라는 마음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사람들이 포기해도 포기하지 않고, 다른 이들이 노력하지 않을때 더 많은 노력을 하며 힘써 일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도우심을 더 많이 체험하기 위해서요.

하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신다고 하는데도 어쩌면 우리는 세상사람들보다 더 가난하게 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이 계시지 않기 때문에 가난해지는게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가난에 처하면 힘들다고 삶을 포기하고, 때로는 자살을 하기도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이 계시기에 가난해도 기쁘고 평안하게 살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난해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이는 세상에서 성공하고도 돈이나 명예가 채워주지 못하는 무언가로 인해 허무해하고, 때론 성공을 이루는 과정에서 지은 부정과 부패로 결국은 심판을 받고, 때로는 자살을 하게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 믿는 자들은 세상사람들보다 성공하더라도 그 무엇보다 하나님이 더 소중하고 인생의 목적이 되는 분이시며, 돈이나 명예는 배설물과 같은 것이라 생각하며, 그 성공으로 인해 행복을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인한 평안과 기쁨을 누리며 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믿는 자들에게 자살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빌립보서 4장 13절 말씀에 앞서 자신이 비천에 처할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줄도 알게되었다고 말합니다. 즉 우리는 우리의 환경이 좋든 어렵든, 가뭄이든 홍수이든 그것에 영향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뿌리내리고 있는 그 물의 근원, 즉 하나님으로 인해 풍성함을 받아 누리는 시냇가의 나무여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 뿌리내린다는 것은 그렇다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통해 공급함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 공급은 영적인 것입니다. 즉 우리의 신앙생활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기도와 말씀묵상 찬양의 생활을 말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체험하는 시간이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시간을 내기가 참 힘들다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세상이 풍요로워 질수록,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만 살아가기가 더 힘들어지는 것같습니다. 세상에서 지금 당장 우리 눈에 보이는 것들이 너무나도 보암직하고 먹음직스럽기 때문입니다. 또한 세상이 풍요로워질수록 우리는 더욱 바쁘게 일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머릿 속에서는 ‘아~기도해야되는데..’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오히려 친구들과 메신저로 이야기하는데 더 신경을 쓰게되고, ‘말씀을 읽어야 되는데’하면서도 전공서적을 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말씀을 많이 읽고 기도를 많이 한다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하나님과의 참된 교제가 우선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이루어질 때 말씀생활과 기도생활은 자연스럽게 활력을 얻게 됩니다.

우리모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에 뛰어들어 그분의 풍성하심을 누리며 살아가는, 그래서 세상 사람들에게도 크리스쳔들은 어떤 상황에서든 항상 기쁘고 행복하게 살아간다는 생각을 하게 할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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